충격과 공포의 신인 시절 김승현
2001년 드래프트 당시, 김승현과 같은 단신 가드가 KBL에서 통할 것이냐라는 혹평이 있었다. 당시 오리온스보다 지명권이 바로 위에 있었던 코리아텐더가 슈팅 가드 전형수를 지명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김승현이라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를 거른 셈이 되어 버렸다.
전희철은 시즌 전 김승현의 플레이를 보고 어머니에게 "엄마, 우리 팀에 농구 끝내주게 잘하는 애 왔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전희철의 어머니는 '쟤가 다른 선수 이야기하면서 저렇게 신이 난 적이 없는데… (얼마나 잘하길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998-99 시즌 전설적인 32연패를 기록하고, 수 년 동안 쭉 하위권에 처져 있었던 오리온스는 2001년 김승현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승현을 중심으로 한 런앤건 농구로 오리온스는 순식간에 KBL의 강호이자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올라섰다.
2001~02 시즌 김승현은 데뷔전에서 15 득점 10 어시스트, 두 번째 경기에서는 19점 10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탈 신인급의 활약을 했고, 결국 만년 꼴찌 동양을 36승 18패 정규시즌 1위 팀으로 만들었다. 시즌 평균 기록은 12.2 득점 8 어시스트 3.2 스틸을 기록 하였다.
그 해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 동료 마르커스 힉스와 함께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오리온스의 멤버는 판타스틱 5라고 불렸는데, 김승현(PG), 김병철(SG), 전희철(SF), 마르커스 힉스(PF), 라이언 페리맨(C)까지 포지션별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리하여 데뷔 시즌 KBL 역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 여기에 BEST 5, 어시스트상, 스틸상까지 수상하며, 전무후무한 데뷔 시즌 5관왕을 달성했다.
중국까지 넘었다
뒤이어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결승전에서 5년 동안 이겨본 적이 없던 중국을 만나, 패색이 짙던 경기 종료 막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득점 등으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전 대역전극을 지휘하여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연히 MVP에 등극했으며, 병역 특례도 받았다.
이 모든 게 프로 데뷔 후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며, 김승현은 이 짧은 기간에 농구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 당시 김승현을 능가하는 임팩트를 보여 준 선수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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